연준이 돈을 공급하면 위험자산은 곧바로 오를까. 이 글은 유동성 정책이 발표되고 금융시장에 번지는 시차를 살피며, 연준 자산 잔액으로 알 수 있는 방향과 알 수 없는 당일 가격을 가른다. 결론은 간단하다.
유동성 답에서 ‘바로’를 지웠다
먼저 이렇게 시켰다.
“중앙은행이 양적완화를 시작한 날과 자산 가격이 반응한 날을 같은 날로 취급하지 말아 줘. 정책 발표, 실제 채권 거래, 금융기관의 자금 운용, 시장 가격 반영을 시간순으로 나누고 각 단계에서 확인할 지표도 적어 줘.”
나온 답에는 네 개의 시계가 있었다. 정책 방향을 알리는 발표, 중앙은행의 채권 거래, 금융기관의 자금 이동, 투자자의 기대가 가격에 반영되는 시점이다. 같은 날이 아니다.
그러므로 “유동성이 늘었으니 오늘 오른다”는 식의 해석은 중간 과정을 건너뛴다. 유동성은 시장의 수위를 보여 주는 배경에 가깝고, 하루의 등락을 정하는 버튼은 아니다. 여기까지가 질문의 답이다.
연준 자산 잔액은 시장에 들어간 주문액이 아니다
양적완화가 시작되면 중앙은행은 국채 같은 채권을 사들이고 대차대조표를 늘린다. 금융기관이 보유한 준비금과 민간의 예금 여건도 함께 달라질 수 있다. 돈의 제약이 느슨해지는 셈이다.
하지만 늘어난 잔액 전부가 주식이나 코인으로 직행하지는 않는다. 일부는 은행 안에 남고, 일부는 채권이나 대출로 향하며, 소비와 기업 운영에 쓰이는 몫도 생긴다. 행선지는 매번 다르다.
양적긴축은 반대편에 놓인다. 중앙은행이 만기 채권을 다시 사들이지 않거나 보유 자산을 줄이면 금융 체계의 여유 자금은 감소하는 방향을 띤다. 그래도 모든 자산이 같은 폭으로 내려가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발표와 집행과 가격은 서로 다른 시계를 쓴다
시장은 실제 집행보다 앞서 움직이기도 한다. 중앙은행이 채권 매입 축소를 예고하면 투자자는 앞으로 줄어들 자금 여건을 먼저 가격에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대가 선행한다.
반대 경로도 있다. 완화 발표가 나와도 이미 예상됐거나 정책 규모가 기대보다 작다면 가격 반응은 약할 수 있다. 발표 직후의 등락만 보고 돈의 공급 효과를 확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전달 속도도 제각각이다. 정책은 단기금리와 채권 수익률, 대출 조건, 환율, 위험 선호를 차례로 건드리며 자산 가격에 닿는다. 어느 경로가 강한지는 당시 금융 환경에 따라 바뀐다.
금리와 유동성이 엇갈리면 무엇을 적어야 하나
유동성을 읽을 때는 잔액보다 변화 방향을 먼저 적는 편이 낫다. 자산 매입이 확대되는지, 속도가 줄어드는지, 멈췄는지, 보유 자산이 축소되는지를 구분한다. 정지는 확대가 아니다.
금리도 별도 줄에 둔다. 금리가 높아지는데 유동성 공급이 이어질 수도 있고, 금리가 동결됐지만 양적긴축으로 자금이 줄어드는 구간도 생긴다. 두 수도꼭지가 늘 같은 방향인 것은 아니다.
판정 시점은 자료가 공개된 뒤다. 정책 발표문에서 방향을 확인하고, 이후 공개되는 중앙은행 대차대조표에서 집행 흔적을 대조한다. 그보다 앞선 가격 움직임은 사후에 확인한 결과로 따로 남겨야 한다.
돈이 늘었는데 자산이 약한 경우도 있다
공급된 돈이 소비와 물가로 많이 향하면 중앙은행은 예상보다 일찍 긴축을 검토할 수 있다. 기업 실적 악화나 신용 불안이 겹친 때에는 금융 여건이 완화돼도 위험을 피하려는 움직임이 더 강할 수 있다. 밀물에도 모든 배가 동시에 뜨지는 않는다.
반대로 양적긴축 중에도 자산 가격이 오르는 구간은 나올 수 있다. 긴축 종료에 대한 기대, 실적 개선, 재정 지출이나 민간 신용 확대가 유동성 감소의 일부를 상쇄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실패도 생긴다.
이런 엇갈림은 유동성이 쓸모없다는 뜻이 아니다. 유동성 하나만으로 짧은 가격 경로를 정하려 했던 해석이 지나치게 좁았다는 뜻에 가깝다.
유동성 지표는 어디까지 답할 수 있나
유동성 지표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중앙은행이 돈의 양을 늘리는 방향인지 줄이는 방향인지다. 금리와 함께 보면 금융 환경이 위험을 받아들이기 쉬워지는지, 부담이 커지는지도 관찰할 수 있다.
당일 방향은 남는다. 정책의 선반영 정도와 자금의 행선지, 다른 경제지표와 돌발 사건은 연준 자산 잔액만으로 알 수 없다. 유동성은 계절을 설명하지만 오늘의 날씨까지 맞히지는 못한다.
금리와 유동성이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킬 때 시장의 수위를 어떻게 판단할지는 남은 질문이다. 두 지표를 한 세트로 읽는 기준과 QE·QT의 작동 구조는 『경제지표의 기본기』 6장 「유동성 — 돈의 밀물과 썰물」에서 이어서 살펴볼 수 있다.
『경제지표의 기본기』에서 이어지는 글
- 달러인덱스는 잠잠한데 원달러 환율만 오르면 무엇을 봐야 할까
- 연준이 돈을 풀었는데 시장은 왜 바로 오르지 않을까 · 지금 읽는 글
- 경제지표가 좋게 나왔는데도 가격은 왜 떨어질까
- 경제지표를 읽고도 계좌 앞에서 막히는 이유
- 금리 인하는 왜 가끔 자산 가격을 살리지 못할까